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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이야기

스위스 루체른 빈사의 사자상의 슬픈 역사

<사자는 자신의 갈기를 깎아지른 절벽 아래의 은신처에 드리웠다. 그는 절벽의 살아있는 돌에서 깎아낸 사자이기 때문이다. 사자의 크기는 웅장했고, 그 자세는 고귀했다. 그 어깨에는 부러진 창이 꽂혀 있는채, 사자는 고개를 숙이고서 그 앞발로 프랑스의 백합을 지키고 있었다. 절벽에 드리운 덩쿨은 바람을 따라 흔들리고, 절벽 위에서 맑은 샘물이 흐르다 저 아래 연못으로 떨어저내렸다. 수련이 핀 연못의 부드러운 표면 위로 사자의 모습이 비쳤다.

그 주변에는 녹음이 우거졌다. 이 곳은 소음과 복잡함과 혼란에서 떨어져 차분한 숲의 구석에서 보호받고 있다. 이 사자가 죽어갈 곳으로는 예쁘장한 철제 난간을 쳐둔 소란스러운 광장의 화강암 받침대가 아니라 이곳이 걸맞았다. 루체른의 사자는 어디에 있던 인상적일 것이다. 하지만 이곳만큼 그의 모습이 인상적일 곳도 없으리라.>

빈사의 사자상은 루이16세를 지키다 죽어간 786명의 용병을 기리기 위한 조각이다. 이 조각을 설명하기 위한 글로 마크 트웨인의 저 설명 글 이상의 글은 없으리라.

프랑스 혁명 당시 혁명군을 피해 튈리르 궁으로 피신한 루이 16세를 지키는 스위스 용병들이 있었다. 루이 16세는 자신의 충성스런 근위대 마저 자신을 버리고 도망친 마당에 더 이상의 희생을 줄이고자 그들의 대장에게 말한다.

"그대들은 충분히 신의를 지켰다. 이제 그들의 나라로 돌아가도 좋다."

하지만 스위스 용병들이 선택한 것은 불명예스런 귀환이 아닌 죽음이었다. 대포로 무장한 수 십 배의 혁명군과 맞서 그들은 최후의 1인까지 싸우다 모조리 전사하고 만다.

사자는 심장에 창을 맞아 죽음에 가까웠고, 사자의 얼굴은 고통과 고단함, 삶에 끝에 이른 체념 등으로 인해 처연할 정도로 일그러져 있다. 하지만 그 상태에서도 사자는 부르봉 왕가를 상징하는 백합이 새겨진 방패를 소중히 끌어 안고 있다. 후에 그들이 왜 죽음이라는 극한의 공포 앞에서도 물러서지 않았는 지 이유가 밝혀진다.

한 병사가 가족에게 보내는 편지에는 자신들이 물러 서면 스위스 용병에 대한 신뢰를 잃게 될 것이며, 이로 인해 자신들의 후손들은 용병으로서 일자리를 얻지 못하게될 것이다. 우리는 그것이 죽음보다 더 두렵다.

스위스가 용병으로 이름을 떨친 배경에는 가난이 있었다. 영토가 척박하고 자원이 없는 스위스는 사람 이외의 자원이 없었고, 그 사람을 다른 나라에 수출함으로써 다른 가족이 생존할 수 있는 그런 나라였던 것이다. 그리고 이제 세계에서 남 부럽지 않은 부국이 된 스위스는 당시 피를 팔아 가족을 부양했던 선조들의 희생을 기리기 위해 스위스에서 가장 평화로운 땅, 루체른의 숲 속에 그들을 위한 안식처를 만든 것이다.

빈사의 사자상을 보며, 일생을 고단하게 살았던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나아가 영화 국제시장을 통해 소개된 파독 광부들과 간호사들의 떠올리며 몇 번이나 눈물을 보이지 않기 위해 하늘을 올려다 봤다. 고 박정희 대통령이 독일을 방문할 당시, 파독 광부들과 간호사들을 만나 '나라가 가난하여 그대들에게 이런 고생을 하게 하였다. 미안하다.' 하고 눈시울을 붉혔다는 이야기가 생각난다.

한마디 더

빈사의 사자상의 지도에서 보는 바와 같이 루체른 역에서 까펠교를 거쳐 도보로 10분이면 닿을 수 있는 거리에 있다. 화장실 사용에 1.5 CHF를 받는 스위스에서 보기 드물게 무료 공중 화장실 - 시설도 거의 우주 정거장 수준-을 이용할 수 있으니, 꼭 방문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