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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읽기

더 리더 (The reader, 2009) - 스티븐 달드리

(본 포스트는 영화 줄거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독일 작가 베른하르트 슐링크의 동명 베스트셀러 소설을 아카데미 어워드 제조기라는 스티븐 달드리가 영화한 작품입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그저 사는 것만으로도 힘에 부쳤던, 그래서 글 조차 배울 기회조차 갖지 못했던 한 여인에게 국가의 명령마저 넘어서는 어떤 "인간으로서의 도덕이나 숭고한 가치"를 갖지 못했다고 비난하고 질타하는 것은 지식인이라는 탈을 쓰고 행하는 다른 형태의 "폭력"이 아닐까 하는 불편한 감정을 느끼게 했던 영화입니다.

여 주인공 한나 슈미트 역을 연기한 케이트 윈슬렛은 타이타닉의 이미지를 넘어서 이 작품을 통해 4번의 도전 끝에 아카데미 여자 주연상을 수상하였습니다. 애초에 캐스팅 되었던 니콜 키드만의 임신이 아니었다면, 이번에도 그녀를 비켜 갔을 지도 모를 영예가 뜻밖의 행운으로 그녀를 찾아 온 것입니다.

행운의 캐스팅이었다 하더라도, 케이트 윈슬렛의 열연은 호평을 받기 충분한 것이었습니다. "영화" 같은 그저 이쁘기만한 연기가 아닌, 굴곡진 삶을 산 30대가 보여 줄 수 있는 현실의 노곤함이 늘어진 살집 같이 덕지 덕지 묻은 그런 캐릭터를 그녀는 너무도 자연스럽게 연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영화의 전반부에 등장하는 데이빗 크로스와의 연속되는 정사 씬이나 노출 씬은 세상을 좀 산 여인이 십대 소년을 가지고 노는 불장난 처럼 불편해 보입니다.

그녀는 사랑을 나누고 나서 항상 소년에게 책을 읽어 달라고 합니다. 책 속의 이야기에 감동하고, 슬퍼하고, 또 젊잖지 못한 소설(차털레이 부인의 사랑)을 읽을 때는 "어쩌면 이렇게 저속할 수가!" 라고 분개하면서도 계속 읽어 달라는 이율배반적인 귀여운(?) 모습을 보이기도 합니다.

불장난 처럼 시작된 연애는 소년에게는 사랑이 되고, 소년은 모아 둔 돈으로 둘 만의 여행을 계획합니다. 그것은 또한 그녀에게도 일생 동안 경험하지 못한 평화로운 행복의 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우연히 찾은 예배당에서 아이들의 천사 같은 합창을 듣는 그녀는 표현할 수 없는 감동에 눈물을 흘립니다.


한편 전철 검표원으로 자신의 일에 누구 보다도 충실했던 그녀는 성실성을 인정받아 사무직으로 승진할 기회를 잡게 됩니다. 하지만 승진이 확정되던 날, 그녀는 돌연 자취를 감추게 됩니다.

시간이 흘러 소년은 자라 법대로 진학을 합니다. 하지만 성장기의 가장 큰 부분을 잃어 버린 그의 삶은 무기력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소년은 수업의 일부로 재판을 견학하게 되고, 사라졌던 그녀를 그곳에서 만나게 됩니다.

그 재판은 유태인을 교회에 가두고 불 태워 죽인 나치 전범들을 처벌하기 위한 재판이었고, 그녀는 유태인들을 가두고 감시했던 감시원의 한 명으로 이었던 것입니다.

"저는 국가가 저에게 준 일에 충실했어요. 불이 났지만, 저는 문을 열고 사람들을 대피시켜야 한다는 명령을 받지 못했어요. 그 사람들을 거기에 가두고 지키는 것이 제 일이었어요."

그녀는 오히려 자신을 비난하는 사람들을 이해를 못하였고, 자신이 한 일이 왜 범죄가 되는 지 조차 알지 못했습니다.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그녀의 동료들은 벌을 피하기 위해 거짓 눈물을 흘리며, 자신들은 명령을 받았을 뿐이고, 모든 것은 그녀의 책임 이라고, 자신들은 죄가 없다고 항변 합니다. 심지어, 유태인 학살을 위한 서류에 사인한 것 역시 그녀였다고 증언을 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거짓 증언이었습니다. 그녀는 글을 읽거나 쓰지 못하는 문맹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법관들은 당시의 서류를 보여 주며 그녀에게 확인을 요구합니다. 당황한 그녀... 하지만 그녀는 곧 정신을 가다듬고 이야기 합니다. 그럴 필요 없다고, 자신의 서명이 맞다고... 그녀는 그 많은 사람들 앞에서 자신이 문맹임을 인정하는 수치를 견딜 수 없었던 것입니다.

소년은 모든 사실을 알고 울음을 터뜨립니다.

그녀는 무기 징역을 선고 받고 감옥에 갇힙니다. 그리고 소년은, 아니, 이제는 어른이 된 그는 책을 읽어 녹음한 테이프를 그녀에게 보내 줍니다. 비록 감옥에 갇혀서나마 그녀는 다시 행복을 찾은 듯이 보입니다.

그리고 어느 날 글을 배우기 시작하는 그녀...

그러나 글을 배운 것은 그녀에게는 오히려 불행을 가져 오게 됩니다. 그녀가 과거에 저지른 잘못이 얼마나 큰 죄악이었는지, 그녀가 무지로 인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죽음과 절망으로 몰아 넣었는 지 알게 된 것입니다.

결국 가석방을 앞둔 어느 날 저녁, 그녀는 목을 매어 자신의 인생을 마감하고, 그녀의 무덤 앞에서 자신의 딸에게 소년은 옛날 이야기를 들려 주며 영화는 막을 내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