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22일 18시30분 현재 폐기를 잠정 연기하는 것으로 발표가 났습니다. 위안부, 징용공에 대한 문제에 대해 다시 한번 협의를 하려나 봅니다.)
일 자정을 앞두고 많은 사람들이 한일 지소미아가 어떻게 결론이 날 지 궁금해 하는 것 같습니다.
결론부터 말씀 드리자면 지소미아의 연장 가능성은 그렇게 높지 않아 보입니다. 우리나라의 여권과 청와대에서는 일본의 입장 변화 없이는 지소미아 파기가 불가피하다고 밝히고 있고, 그것은 일본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한국 입장에서는 일본이 화이트리스트에서 한국을 배제한 것을 문제 삼아 일본이 먼저 시작한 사태라고 하고, 일본은 지금껏 암묵적으로 이어져 왔던 위안부와 징용공에 대한 합의를 한국이 먼저 깼으니, 한국이 먼저 시작한 사태라고 합니다. 문제의 인식이 이렇게 다르니 어느 한쪽이 백기를 들지 않는 이상 평화로운 합의는 어려워 보입니다.
친일, 반일을 떠나서 지소미아가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미국과의 관계 때문입니다.
일부 보수층에서는 지소미아 압박이 미국이 한국 대통령의 좌파적 성향 때문에 우리를 못 믿어서 그러는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하지만 돌아가는 형세를 보면 꼭 그런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언론을 보면 미국은 최근 들어 미국의 연방국들 전체에 군사비 분담금의 대폭 인상을 압박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경우는 5배, 일본은 4배, 그리고 나토(NATO) 가입국들에게도 일본과 유사한 수준의 인상을 이미 요구하였거나, 요구하려고 준비 중입니다. 게다가 지금껏 미국과 함께 대 IS 전선을 구축했던 쿠르드 족을 버리다시피 하고 시리아에서 철군하겠다고 선언하였습니다. 물론 국내외 비난이 높아지자 일부 주둔으로 바꾸긴 했습니다만.
그렇다면 트럼프는 왜 이런 결정을 내린 것일까요?
이러한 일련의 사건의 배후에는 눈덩이처럼 불어 나는 미국의 재정적자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금년도 미국의 재정적자는 1조 달러 즉 1,200조 원을 넘어설 것으로 발표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재정적자의 문제는 올해 한 해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렇게 재정적자가 이어지는 상황에서는 국채를 발행해 부족한 예산을 조달해야 하는 데 이를 위해서는 달러가 강해야 합니다. 달러가 강해야 미국 국채의 매력도가 올라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달러가 강하다는 것은 국제시장에서 미국산 제품의 가격이 올라간다는 의미이므로 미국산 제품의 가격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요인이 됩니다. 결국 이로 인해 미국 산업의 경쟁력 악화로 이어질 수 밖에 없는 구조인 것입니다. 게다가 셰일가스의 경제성 확보는 미국이 더 이상 안정적인 아랍 산 원유 공급로 확보에 목을 매지 않아도 되게 만들었고, 미군의 대외활동 명분을 더욱 약화시킵니다. 이런 상황에서 일부 미국의 지식인들이 "왜 우리가 세계 평화를 위해 우리의 세금을 써야 하는가?" 라는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른바 "신고립주의"의 등장입니다. 특히나, 철저하게 기업가 출신인 트럼프는 돈도 안되는 평화 따위에 미국이 이렇게나 많은 돈을 쓰는 것이 매우 못마땅하였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낭비를 줄여야겠다고 생각하였고, 그 결과가 지금의 변화로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세계 정세의 변화 속에서 한일 지소미아는 어떻게 이해되어야 할까요?
군사 비용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는 해외 파병된 미군의 질적/양적 수준을 낮추어야 합니다. 하지만, 그럴 경우 해당 지역의 위협 수준이 올라 가기 때문에 미국으로서는 철군 이후에도 이전과 다름없는 안보 수준을 담보할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합니다.
동북아시아는 특히나 잠재적 위협국가인 중국과 러시아가 태평양을 건너 미국과 마주하는 지형이기 때문에 이 지역에서 두 강대국을 인근에서 견제할 수 있는 강력한 우호 세력이 필요합니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미국에게 한일 지소미아는 동북아시아에서 안심하고 철군하기 위해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 협정입니다. 미군 없이도 러, 중, 북한의 위협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한국과 일본이 독자적으로 군사력을 강화하면서 또 미국과 합쳐 삼국이 긴밀하게 협력하여야 하는데, 그 연결고리 중 하나가 한일 지소미아인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한국의 스탠스가 자구 미, 일에서 멀어져 중-러-북한으로 가까워지고 있으니 미국 입장에서는 생각이 많아지는 것입니다. 빨리 한국과 일본을 협력시켜 현재 미군의 자리를 대체해야 하는데 자꾸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니 미국 입장에서는 답답한 노릇입니다. 예비역, 현역 합쳐서 별 12개가 지소미아 연장을 압박했다는 기사는 이런 미국의 심정을 대변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많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지소미아 파기를 우려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인 것입니다. 혹시나 이번 일을 계기로 한-미 관계가 틀어져서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는 게 아닌가 하는 걱정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한국이 당장 지소미아를 파기한다 하더라도 미국이 한국에 대해 주한미군 철군과 같은 극단적인 카드를 꺼내지는 못합니다. 미 하원에서 한국에 일정 수준의 주한 미군이 유지되어야 한다는 법안을 통과시켰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미국으로서는 한국이 일방적으로 파기한 지소미아 때문에 발생할 수 있는 추가적인 비용에 대해서는 부담을 지고 싶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방위비 분담금 협상에서 더욱 강력한 자세로 나올 것은 분명합니다.
우리나라 입장에서도 서로에게 껄끄로운 일본보다는 든든한 미국이 계속 동북아시아에 남기를 희망하기 때문에 미국의 눈치만 아니라면 지소미아를 굳이 고집할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비록 그로 인해 분담금 협상에서 조금 더 양보하는 한이 있더라도 말이죠.
이러한 양국의 이해 관계에서 볼 때 지소미아 파기되고 결국 모든 것은 돈의 논리로 풀어질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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