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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따라잡기

조국 구속영장 기각 사유 원문에 담긴 권덕진 판사 속마음

지난 27일 새벽 조국 전 장관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되었습니다.

영장 기각 후 구치소를 나서며 관계자에게 인사하는 조 전 장관, 출처:뉴시스

조국 전 장관에 대한 영장이 기각되었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청와대는 즉각 고민정 대변인을 통해 "법원의 판단을 존중한다." 며 검찰의 무리한 구속영장 청구에 따른 당연한 결과가 아니겠냐는 반응을 내놨습니다.

청와대 입장 발표를 하는 고민정 대변인, 출처: 경향신문

더불어민주당 역시 "국민의 정서와 눈높이를 고려한 옳은 결정"이었다면서 다시 한번 검찰 개혁을 위한 공수처법 통과의 필요성을 강조하였습니다.

반면에 한국당은 "이해할 수 없는 결정" 이라는 의견을 내고, 검찰에 영장의 재청구를 요구하였습니다.

사실 영장기각이 최종 결정되기까지 법원의 분위기는 대체적으로 "구속이 될 것"이라는 쪽이었다고 합니다.

심지어 어느 언론에서는 구속이 될 것이라는 사실은 전제로 기사까지 온라인에 올렸다가 부랴 부랴 내리는 촌극을 빚기도 했습니다. 그만큼 법원으로서도 힘든 결정이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조국 영장 기각 사유를 두고 권덕진 영장전담 부장 판사가 작성한 두 개의 영장기각 사유가 공개되어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그 중 하나는 법원 공보관을 통해 언론에 공개된 기각 사유이고, 다른 하나는 검찰로 반송된 영장청구서에 기재된 기각 사유인데 내용은 유사하지만 미묘하게 다른 뉘앙스를 풍기고 있습니다.

법원 공보관을 통해 공개된 영장 기각 사유 일부, 출처:TV조선

이를 두고 권덕진 부장판사가 작성한 기각 사유서를 법원이 발표 전에 임의로 수정한 것이 아니냐는 말까지 나왔습니다만 이후에 두 개의 사유 모두 권덕진 부장판사가 작성했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논란은 사그라들었습니다.

문제가 되는 부분을 살피기 위해 필자가 언론에 보도된 원문 내용을 모아서 아래와 같이 재 구성해 보았습니다. 빨간 줄을 그은 부분이 두 개의 기각 사유에서 차이가 나는 부분입니다.

권덕진 판사의 기각 사유서 추정, 출처: 인터넷 기사 및 포스팅 자료 참고

차이가 나는 부분은 아래의 세 군데입니다.

  • 피의자가 일부 범행 경위와 사실을 부인

  • 법치주의의 후퇴 및 국가 기능의 공정한 행사 저해

  • 피의자가 본 사건을 통해 개인적인 이익을 취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판단

이를 통해 우리가 추정할 수 있는 몇 가지 사실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먼저, 조국 전 장관이 일부 범행을 부인하고 있으나 구속 영장을 기각한다는 사실. 범행 부인은 구속의 사유가 됩니다만 권덕진 부장 판사는 영장을 기각하였습니다.

다음은 권덕진 판사는 조국 전 장관의 혐의에 대해 유죄라는 사실을 확신한다는 사실. 이는 형사재판 판결문에나 사용될 것 같은 강한 논조의 표현, 즉 법치주의의 후퇴라든지, 국가기능의 행사 저해와 같은 표현을 사용한 것으로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습니다. 삭제된 부분과 대체하여 사용한 "죄질이 좋지 않다." 라는 표현에서 잘 알 수 있습니다. 죄질이라는 것은 일단 유죄임을 인정한 후에 그 배경이나 의도가 불가항력인지 고의였는지에 따라 판단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문장은 조국 전 장관이 본 사건을 통해 개인적인 이익을 얻을 것이 없다는 사실. 이는 보는 각도에 따라 여러 가지 해석이 가능한 문장인데, 권 판사가 보기에 조 전 장관은 본인의 이익이 아닌 타인의 이익을 위해(혹은 압력에 의해) 권한 남용을 하였다고 판단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추정이 가능하게 합니다.

위의 사실을 종합해 보면 결국 권덕진 부장판사는 조국 전 장관의 구속 필요성에 대해 인정하면서도 왜 인지는 모르겠지만 영장은 기각한다는 것을 기각 사유를 통해 주장하고자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즉, 워낙 강력하게 나뉜 국민적 요구의 꼭지점에 위치한 사건이기 때문에 혐의에 대해서는 인정하면서도 구속의 필요성은 부인하는 선에서 타협을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추론입니다.

26일 동부구치소 앞 조국수호집회, 출처:이데일리

물론 보수는 보수대로 "권덕진 판사 아웃"을 네이버 실검에 띄우며 비난에 나서고, 진보는 영장 판사가 멋대로 형사 판결까지 해 버렸다고 분노하고 있는 상황이 되어 버렸습니다만.

가로세로연구소 방송을 통해 권덕진 아웃 실검올리기를 제안한 강용석 변호사

권덕진 부장판사는 경북 봉화 출신으로 1995년 사법시험에 합격해 2000년 대구지법에서 판사 생활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정치적인 성향은 잘 드러나지 않으나 알려진 바에 따르면 동부지법의 다른 영장전담 판사(박정길 부장판사-환경부리스트 관련 김은경 전 장관 구속영장 기각)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보수적 성향의 판결을 하는 판사로 알려져 있다고 합니다. 화제가 된 판결로는 최근 유재수 전 부산시 경제부시장의 구속영장을 인용한 건이 대표적입니다.(사진이 쓸만한 게 없어 올리지 않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이제껏 무난한 공직생활 중에 느닷없이 국민적 관심을 받고 있는 사건들이 줄지어 밀어 닥치니 판사로서도 인간적인 고민이 깊어질 수 밖에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