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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

댄스 댄스 댄스 - 무라카미 하루키 하루키를 처음 만난 것이 92년도였으니, 벌써 25년이나 전의 일이다. 그 때 태어난 아이가 같은 회사에서 같이 월급을 받으면서 다니고 있으니, 참 감개무량한 일이다.을 읽고, 를 읽고, 을 읽고, 을 읽고, 를 읽고, 를 읽고, 을 읽고, 다시 으로 돌아 와서 그 책을 끝도 없이 반복해서 읽었다. 제일 먼저 산 책을 잃어 버리기 전 마지막으로 읽은 것이 53번째 읽는 것으로 표시가 되어 있었으니, 그 이후로 읽은 것을 포함하면 60에서 70번 정도를 읽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레코드판이었다면 홈이 다 닳아서 없어질 지경으로 읽어댔던 것 같다.그리고 2001년 학교를 졸업하고는 십 년 넘게 하루키를 읽지 않았다. 회사를 다니고, 회사를 옮기고, 사람들을 만나고, 결혼을 했다.는 경쾌한 소설이다. 하루키는 .. 더보기
1973년의 핀볼 -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 노르웨이의 숲에서 주인공 와타나베는 스콧 F. 피츠제럴드의 소설 '위대한 개츠비'에 대해 이렇게 평하고 있다. 나의 십대의 마지막을 장식한 책이 "노르웨이의 숲" 이었다면 내 이십대를 지배했던 하루키의 작품이 "1973년의 핀볼"과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였다. 하루키가 에 대해 말했듯, 이십 대의 나에게 '아무 데나 펼쳐 읽어도 실망하지 않는' 유일한 소설이 앞의 두 작품이었다. 하루키 역시 두 작품에 대해 "더 이상 손을 댈 곳이 없다. 불완전한 채로 의미가 있기 때문.."이라고 밝힌 바가 있다. (중략)스리 플리퍼 스페이스십은 대열의 저 끝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는 화려하게 치장한 동료들 사이에 끼여 아주 얌전하게 보였다. 깊은 숲속 평평한 바위에 앉아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만 같.. 더보기
무라카미 하루키 수필집, 랑겔한스섬의 오후 - 무라카미 하루키 팔월의 크리스마스(전문) 행위, 그 자체를 행하는 것은 별 문제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어쩐지 하기 쑥스러운 - 그런 타입의 작업이 세상에는 몇 가지 존재한다. 예를 들면 여름 무더위가 한창 기승을 부릴 때 크리스마스 캐럴을 구매하는 행위도 그 중 하나이다.레코드 한장 사는 일이 그럴 만큼 중대한 결의를 요하는 행위가 아님에도, 나는 그 레코드가 크리스마스 캐롤을 담고 있고, 계절이 팔 월이라는 것만으로 늘 '망설임의 바다' - 라는 게 달 표면에 있다고 한다 - 의 깊고 어두운 심연을 헤매이게 된다.과연 올 크리스마스에 나는 정말 캐롤이 듣고 싶어질까? 그리고 크리스마스란 그렇게 의미가 있는 것일까?하고. 팔 월의 한복판에서 크리스마스 및 크리스마스의 주변적 사물에 대한 가치 판단에 쫓기는 것도 꽤 괴로.. 더보기
사라진 공간들, 되살아나는 꿈들 - 윤대녕 휴게소, 공항, 역, 터미널 - 우연과 필연이 마주치는 지점 중에서고속도로 휴게소에서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소설을 쓰기 위해 차에 짐을 가득 싣고 남쪽 지방으로 내려가다가, '천안삼거리 휴게소'에서 밥(병천 순대 국밥이었다)을 먹고 있는데, 건너편 테이블에 앉아 있는 남녀가 마치 필연적인 장면처럼 눈에 들어왔다. 남자는 등을 보인 상태여서 얼굴을 볼 수 없었지만, 여자는 나와 마주 보이는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 여자는 한때 나와 사귀었던 의상 디자이너였고 가끔 여행도 함께 다녔으며 내게 청혼을 한 바도 있었다. 단, 한 가지 조건이 있었다. 그것은 내가 직장을 갖는 것이었다. 물론 나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이후 그녀는 대기업에 근무하는 자와 결혼을 했고 내게는 청첩장 조차 보내 오지 않았다. 나.. 더보기
노르웨이의 숲(상실의 시대) - 무라카미 하루키 2016년 1월 11일 새벽 6시, 나는 스키폴 공항에서 취리히로 가는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제 취리히 행 비행기의 탑승이 시작될 것이었고, 나는 커피숍이, 정확히는 커피숍 안에 있는 흡연실이, 문을 여는 시간과 보딩 사이의 짧은 시간을 이용해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강화유리 너머로 보이는 활주로는 아직 어둠에 쌓여 있었고, 한 눈에 봐도 슬라브 계임이 분명해 보이는 블론드 머리의 날씬한 여학생이 담배를 문 채 스마트폰으로 무언가를 열심히 타이핑하고 있었다. 머리가 희끗한 백인 남자가 다가 와서 라이터를 켜는 흉내를 내길래, 나는 주머니의 라이터를 꺼내 주었다. 그는 불을 붙여 급하게 한 모금 피더니 이제 살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Thanks"라고 말한다. "where are you from?" .. 더보기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 무라카미 하루키 나는 끔찍한 꿈을 꾸었다.나는 커다란 검은 새가 되어 서쪽을 향해 정글 위에 날고 있었다. 나는 깊은 상처를 입어 날개에는 핏자국이 검게 엉겨 붙어 있었다. 서쪽 하늘에는 불길한 검은 구름이 하늘 가득 퍼지기 시작했고 주위에서는 어렴풋이 비 냄새가 났다.오래간만에 꾸는 꿈이었다. 너무나 오래간만이라 그게 꿈이라는 걸 깨닫기까지도 긴 시간이 걸렸다.나는 침대에서 일어나 온몸의 끈끈한 땀을 샤워를 하며 씻어 내고 나서 토스트와 사과 주스로 아침을 때웠다. 담배와 맥주 때문에 목구멍에서는 마치 오래된 솜을 쑤셔 박아 넣은 것 같은 맛이 났다.식기를 싱크대에 던져 넣은 후 나는 올리브 그린색 양복과 가능한 한 잘 다림질된 셔츠, 그리고 검은 니트 넥타이를 골라서, 그것을 든 태 응접실의 에어컨디셔너 앞에 앉았다.. 더보기
그녀에게 얘기해 주고 싶은 것들 - 윤대녕 삶의 한가운데, 감동이 유독 잦은 때가 있었습니다. 때없이 목이 메던 순간들 말입니다. 그 모든 소리들, 그 모든 풍경들, 그 모든 사람들이 저를 목메게 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스무 살 전후해서 그 후 몇 년간. 누구나 가슴 벅차고 그만큼 괴로웠을 생의 한가운데. 그런 때는 나이가 들어가면서 점점 뜸하게 찾아옵니다. 생의 모든 순간은 단 한 번 왔다 가는 것. 헤어진 지 몇 년 만에 누군가를 만나 똑같은 장소에서 똑같은 음악을 들으며 똑같은 차를 마셔본들 느낌은 전과 같을 수가 없습니다. 어쩌면 전혀 다른 존재와 서로 만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하지만 나는 기다립니다. 그렇게도 마음 졸이며 괴로워하고 긴 기다림 뒤에 가슴이 절대 환희에 타오르던 순간들을 말입니다. 그것이 미혹이었고 다만 젊음이었다고 해도.. 더보기
잉카의 바닥없는 우물 (비밀의 숲) - 무라카미 하루키 그 옛날 쇼난에 '티라미스'라는 얼토당토않은 이름의 러브 호텔이 있었다. 그리고 역시 쇼난의 히라쓰카에서 오오이소쪽 해안에는 '투 웨이'란 호텔이 있다. 나는 이전부터 이 호텔 이름이 마음에 걸려, 그 앞을 지날 때마다 고개를 갸웃거리곤 했다. 나는 투 웨이라고 하면 스피커밖에 생각나지 않는다. 고등학교 시절 갖고 싶었는데 돈이 모자라서 사지 못했다. 그리운 굿맨 301의 모습이 문득 눈앞에 떠오르고 눈꼬리가 시큰해진다……고 할 정도의 일도 아니지만, 아무튼 영어사전에서 이 투 웨이를 찾아보면 '두 방향 어느쪽으로도 사용할 수 있다'든가, '상호작용하는'이라든가, '뒤집어서 사용할 수 있다'는 뜻이 좍 나온다. 으음, 알 것 같군. 러브 호텔이니 상호작용도 하고 뒤집어서 사용할 수도 있단 말이지 하며 납.. 더보기